인간은 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할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 되고,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면 되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다른 이웃들에게 어떤 피해나 고통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자신을 돌아보는 어려운 일을 해야만 하는가?” ‘도덕경’에 나오는 독립불개(獨立不改)는 “홀로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있고, ‘맹자’에 나오는 전심치지(專心致志)는 “온 마음을 다해 뜻을 이룬다”라는 뜻이 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자연 속에서 본연적으로 고독한 상태이며, 본질적으로 불가피하게 혼자일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겉모습은 비슷할지라도, 기독교 신앙이 지닌 ‘자신을 돌아보는 목적’은 그 자체가 다르다. 도덕경이나 맹자,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은 ‘홀로 있을 때’ 본질적으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든지, 또는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자신을 돌아보는 일,’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로는,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에 의해서만 그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이성중심의 지식이나 이로 인한 교양을 쌓는 것은 무의미하다. 만남은 추상적이거나 이념이 아니라 실체요, 사건이다. 그래서 ‘기적’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가장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먼지와 같은 보잘 것없는 한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만남이기 때문이다.
‘홀로 서는 것’ 자체를 위한 ‘돌아봄’이 아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로서의 ‘돌아봄’이다. 초기교회는 이 ‘돌아봄’을 ‘회개’(repentance), 또는 ‘정화’(purification)라고도 표현했다. 이 회개와 정화는 우리의 양심에 단순히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라는 엄중한 자리로 인도한다. 그래서 기독교적 신독(愼獨)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신독(神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한 마디로 회개와 정화는 우리 안에 하나님을 담아내는 필연적 과정이다. 그렇다고 이 회개와 정화는 온전히 인간의 노력으로만 할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다. 이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기독교적 신독(愼獨)은 피조물로서의 철저한 겸손, 동시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헌신이 동반되어져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처럼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버리고, 너무 낮으면 바다에 빠지듯이, 겸손이 없는 신독(愼獨)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의 욕심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죄를 범하게 되고, 성경은 ‘너무 어려워 도저히 읽을 수도 알 수도 없다’는 핑계나 게으름은 우리로 하나님에 대한 무지(無知)의 바다에 빠지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