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인 7일 째는 안식하셨다. 하나님께는 안식일이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이지만 인간에게는 6일 째 창조를 받고 처음으로 맞이한 날이 안식날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육신의 단순한 안식도 포함하지만,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날”이다.
삼위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고, 여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참여한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묵상하는 일을 그만둘 때 인간은 안식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오직 일(work)에만 몰두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가장 많은 일을 하실 때는 ‘인간이 잠을 잘 때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몸은 해독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건강의 비결 중 하나는 ‘숙면’이다. 즉 진정한 안식을 누릴 때 인간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에게 ‘외로움’이 있다는 것은 홀로 있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방법을 모르면 돈이 있어도, 유명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홀로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같이 있다’ 하여 ‘함께 살아간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므로 외로움과 홀로 있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홀로 있음’의 의미를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함께 살아갈 수 없고, 내 자신 안에도 바른 자아상을 세울 수 없다. 아담과 하와는 홀로 있음의 의미를 배우지 못해 상대방을 포용과 용서보다는 비난 및 책임 전가라는 비극을 낳았고, 우리에게까지 물려주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개인으로 창조하신 것은 한 마디로 ‘홀로 있음’을 배우기 위해서다. 특히 신앙인들에게 ‘홀로 있음’은 바로 “하나님을 묵상”하기 위해서다.
우리처럼 홀로 있기를 싫어했던 야곱, 하나님께서는 그를 홀로 있게 하신다(창 32:24). 야곱은 경쟁하기를 좋아했고, 그 경쟁에서 이기는 짜릿함을 좋아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얻는 방법, 그리고 재물을 얻는 방법, 즉 다시 말해 성공하는 법을 잘 알았다. 한 마디로 그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고 결국 “홀로 있는 자리”가 회복이 된다. 이 홀로 있는 자리에서 야곱에게 하나님을 묵상하는 일이 발생한다. 즉 하나님과 씨름하게 된다.
‘영적 독서’ divine reading 의 의미를 지닌 신독(神讀), 이 신독(神讀)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일,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위해 야곱은 자신을 돌아보는 의미를 지닌 신독(愼獨)의 시간을 보낸다.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의 신독(愼獨)이 일어날 때 여기에 진정한 신독(神讀)이 일어나게 되고,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묵상하게 된다.
진정한 신독(神讀, 愼獨)의 삶이 일어날 때 우리는 야곱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 절뚝거리게 되었지만, 그는 더 이상 ‘싸움꾼’이 아닌 ‘겸손의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무한경쟁 시대, 일에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에서 다시 한번 신독(神讀, 愼獨)을 통해 하나님을 묵상하는 삶, 하나님을 아는 삶이 풍성하게 일어나길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