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삶의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쉽게 말하자면, 전자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시요, 주인이시기에 우리 피조물은 그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바라볼 뿐이다. 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에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구원의 완성을 위해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진리에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하나님 말씀과는 반대로 인간 중심의 삶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이 최선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하는가? 만약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람들은 각 자 주어진 시대의 사명들을 지녔고, 그 사명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감당했다는 것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통일 왕국을 이루었고, 에스더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했고, 느헤미야는 자신의 모든 삶을 드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고, 바울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워 세계 선교의 시금석 역할을 감당하였다. 물론 배후에는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목양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시대적 사명은 무엇인가?
한 인간은 작은 우주(universe)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도 무의미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부족하마나 우리 목양교회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먼저 신독(愼獨)이라는 말은 ‘홀로 나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가 있다. 인간은 항상 외부로부터 오는 세속적 가치관과 늘 싸워왔다. 돈, 출세, 성공이 과연 우리를 인간답게 하고 있는지, 이로 인해 행복한지를 돌아보았다. 물론 결과는 우리가 잘 안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 때 비로소 행복하고 평안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해 온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결국 내 손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인간 본질에 대한 고민을 인간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함을 믿는 자들이다. 그래서 다른 의미를 지닌 신독(神讀)은 “영적 독서 divine reading”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적 독서는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이다. 2000년 기독교 역사의 열매는 바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매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다. 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그리스도를 아는 자리로 인도하시며,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께로 인도하신다. 이 모든 구원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의 경험, 선입견, 지식을 겸손히 내려놓고 신독(神讀)을 위한 신독(愼獨)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